한국전쟁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먼 타국에서 참전한 에티오피아

밀리터리|2018. 6. 14. 07:30

한국전쟁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먼 타국에서 참전한 에티오피아



68년 전 1950년 6월 25일에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공산군에 의해 남쪽으로 후퇴를 하였지만 해외에 여러 나라들이 한국전쟁에 연합국으로 참전을 하게 됩니다. 아프리카에 유일하게 에티오피아에서 참전을 합니다. 무려 6,000명의 병사로 황제 친위대도 참전을 하였습니다. 현재에도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싸워 준 에티오피아 제국의 병사들에게 감사한다."라고 씌어진 참전 기념탑이 세워졌습니다.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 에티오피아



한국전쟁에 유일하게 참전한 국가로 에티오피아로 손을 꼽습니다. 이념에 따른 이해관계로만 따질 수 있는 국제사회의 현실이었지만 이와 관련없이 참전하였습니다. 세계 2차대전인 1935년에 이탈리아의 침공을 받은 에티오피아는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을 했었지만 아무런 도움도 없이 27만명이 숨졌고, 이로 인해 송두리째 나라까지 빼앗겨버렸습니다.



끝까지 투쟁을 하였고, 6년 후인 1941년에 승리를 하여 에티오피아 영토 안에 이탈리아를 몰아내었습니다. 한국전쟁에 직접 참여를 하게 된 계기도 에티오피아 황제인 하일레 셀라시 황제도 국가에 위기가 빠졌을 때 이러한 설움을 잘 알기에 한국에 6,000명이라는 병력을 파병하게 되었습니다.



에티오피아 최정예 강뉴부대



강뉴부대의 탄생 배경은 황제직속의 최정예 부대라 불릴 수 있는 제 1근위 사단에서 지원자들을 모집을 하여 1개 대대를 편성을 하였습니다. 1개의 대대는 한국전쟁에 빛을 발할 강뉴부대였습니다. 강뉴부대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있습니다.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을 하다. 적을 초전에 격파한다. 즉, 공산집단의 침략을 격파를 하고, 혼돈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원하라는 하일레 셀라시 황제의 명령이 담겨있습니다.


한국전쟁에 빛을 발한 강뉴부대


한국전쟁에 참전을 한 강뉴부대는 253번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하는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253번의 승리란 결코 쉬운 전투가 아닌 만큼 강뉴부대는 황제의 명령을 잃지 않고, 전투를 하게 되었습니다. 상대 적에게는 강뉴부대 그 자체가 두려움의 대상이자 공포를 떨어야만 했습니다. 강뉴부대는 교전, 사수, 진지방어, 고지탈환 등에서 위력을 발휘하였고, 유엔군도 두려움의 전술이라 불리는 중국의 인해전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백병전을 통해 승리를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만일 위험에 처하면 부사관, 장교들이 가장 선두로 돌진을 하여 적의 포위망을 뚫고 나아갔습니다. 부대원들이 포로가 되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구출해내었습니다. 이로 인해 전 세계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의 강뉴부대의 위용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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