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연방에서 승리를 쟁취한 크로아티아 독립

밀리터리|2018. 6. 6. 16:45

유고연방에서 승리를 쟁취한 크로아티아 독립



20세기 말에 동유럽에는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됩니다. 구소련이 해체가 되고, 동유럽의 국가들도 민주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을 합니다. 유고연방 지도자 요시프 티토가 죽은 후 1991년 부터 1999년까지 수 차례의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유고연방 내에 각 자치주에서 독립을 위해 발발하게 됩니다. 이 때 독립을 한 국가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등 유고연방은 해체가 됩니다.




유교연방이 해체가 되고 21세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공산화의 막을 내린 동유럽에도 자유가 찾아옵니다. 동유럽 내의 국가들도 유럽연합에 가입을 하게 됩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


1991년에 처음에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이라 불렸지만 1년 후인 1992년에 연방이 해체가 됨에 따라 내전이라 부르기 어려워졌습니다. 말 그대로 전쟁입니다. 이러한 전쟁이 유고슬라비아 연방 내에 6개의 공화국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유고연방 탈퇴를 처음으로 한 2개의 공화국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입니다. 비교적 이탈리아와 인접한 위치에 있는 국가입니다. 슬로베니아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체코가 인접한 국가입니다.



다양한 민족이 분포되어 있는 유고연방에는 두 가지의 민족주의 대결 양상을 띠었습니다. 세르비아 민족주의,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입니다. 보스니아도 여기에 끼이게 되어 참혹한 전쟁이 되었습니다. 해외에서는 이를 발칸 전쟁, 10년 전쟁 이라 불리었습니다. 20세기에 걸쳐 유럽 남동부에 발칸 반도에 연이어 존재했던 나라였지만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가 독립을 합니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공화국


발칸반도에는 현재에는 다양한 국가가 있습니다. 이 전에 유고연방에는 다양한 민족과 종료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공산국가였습니다. 소련과 달리 독자적인 노선을 추진을 하였고, 소련 중심의 공산권에 대항을 하던 서방 국가에서 유고연방에 많은 지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소련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에 독자적인 노선을 걷게 됩니다. 경제적으로 풍부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는 유고연방 내에 다른 공화국 보다 부유하였습니다. 세르비아에는 이에 반해 인구가 많았습니다. 훗 날에 유고연방의 개혁개방에는 베트남, 중국 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크로아티아 독립전쟁


유고연방 동쪽의 크로아티아 공화국은 유고연방에 독립을 선언하게 됩니다. 하지만 세르비아 정부는 이에 거부하게 되고, 유고슬라비아 인민군, 세르비아 군이 크로아티아에 침공을 합니다. 처음에는 크로아티아 경찰과 세르비아인의 충돌이었지만 점차 전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이 전역을 강제점령을 하여 유지를 하려고 하였으나 실패를 하였고, 1992년에 크로아티아 공화국은 독립을 하게 됩니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전쟁에 개입을 하게 되어 양상은 크로아티아에 유리하게 돌아갔습니다. 훗날 크로아티아는 유럽 연합에 28번째 회원국으로 가입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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